복음과 화음
김영봉/ 와싱톤한인교회 담임목사
1
대 학생 시절, 중고등부 교사로 섬길 때의 일입니다. 어떤 여학생이 처음으로 중고등부 예배에 나왔습니다. 누군가 전도를 해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여학생에게 어떤 동기로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당시 기독교 서점가를 휩쓸던 「휴거」라는 책을 책가방에서 꺼내 보여 주었습니다. 친구가 그 책을 빌려 주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너무나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 발로 교회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중년의 부인이 되었을 텐데,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가지는 중요한 동기 중 하나입니다. 아니, 어찌 보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습니다. 교활한 정치인들이나 타락한 사업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 ‘위협 전략’(scaring tactics)입니다. 국민들을 공포감에 빠지게 하여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소비자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하여 자신이 팔려는 상품을 사게 만듭니다. 저도 그렇게 속아서 물건을 사 본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물건이 없으면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서 샀는데, 정작 그 위험은 매우 낮은 것이어서, 그 물건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유효 기간을 넘겼습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우 강력한 도구이며,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 가운데도 위협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지옥과 심판과 사탄을 설교의 주제로 삼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기쁜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지옥과 심판에 대한 ‘화음’(두려운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들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화음을 선포하면 교인들을 단속하고 조종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화음은 인간의 영혼을 질식시킵니다. 두려움에 질려 마지못해 복종하는 믿음은 인간의 영혼을 속박합니다. 두려움에 질린 믿음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합니다. 벌을 피할 정도에서 그치려는 심리가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말 년에 기독교로 개종한 임어당 선생이 “왜 그 동안 교회를 외면해 왔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본 교회들은 모두 성난 설교자가 성난 음성으로 성난 하나님을 설교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화음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목사를 만났고, 그 교회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두려움은 연약한 영혼들을 흔들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여 쓰시고 싶어 하는 강한 영혼들은 그런 위협에 쉽사리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기꺼이 줄 만한 진리를 찾습니다.
2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심판의 설교자’였습니다. 곧 다가올 징벌에 대해 설교하고, 그 징벌을 피할 수 있도록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제 곧 오실 메시아는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원의 설교자’였습니다. 그분은 ‘희년’(기쁨의 해)을 선언하시고, 모든 이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그분의 설교 주제는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지옥과 징벌에 대한 말씀도 없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비중으로 보면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했습니다. 말씀과 행동을 잘 살펴보면, 그분은 위협하고 협박하여 믿게 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심으로써 그것에 매료되어 믿도록 유도하셨습니다.
나중에 감옥에 갇혔을 때,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묻습니다. “오실 그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다른 누구를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고 세례 요한이 혼란에 빠졌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땅의 죄인들을 불로 심판하셔야 하는데, 오히려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축하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오해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화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러 오셨고, 두려움이 아니라 평화와 기쁨을 전하셨고, 사탄이 아니라 성령을 전하셨으며, 지옥이 아니라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사탄을 쫓아내고 그 위험성을 가르치셨습니다. 지옥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의 초점은 언제나 천국에 있었고, 구원과 축복에 있었으며, 성령의 역사에 있었습니다. 성령이 활동하는 곳에 사탄은 설 자리를 잃고, 믿음 안에서 구원을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한 영혼을 위협하여 굴종시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위협과 협박과 강요에 의해 속박된 연약한 영혼들을 해방하셨습니다.
우리의 설교, 전도, 선교도 역시 예수님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어쩌다가 교회를 방문한 사람이 ‘기쁨이 충만한 설교자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설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오늘 죽으면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라는 위협적인 질문으로 전도의 문을 열기보다, “당신은 참된 사랑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당신을 위해 준비되었음을 확인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에 질려 화를 피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화를 면할 만큼만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이끌려 신앙생활을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갈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 사람은 천국에 갈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상의 비밀을 아는 예언자가 그 동네에 나타났습니다. 그 예언자는 그 믿음 좋은 사람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이웃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믿음 좋은 사람은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좋아합니다. 마치 정신 나간 사람 같았습니다. 나중에 동네 사람 하나가 그 사람을 붙들고 물었습니다. “아니,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 그렇게 좋아하시오?” 그랬더니 그 믿음 좋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아, 저는 그 동안 하나님을 섬기면서 혹시나 내가 죽은 후 천국에서 받을 상을 바라고 믿는 것은 아닌가, 늘 의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대가를 바라고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시기에 저도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고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저는 내세에 아무런 상도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제 믿음의 동기가 아닙니다. 저는 제 동기가 제 생각처럼 순수한지 자주 의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예언자님을 통해 제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어서 이제부터 마음 놓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기쁘지 않겠습니까?”
참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장차 받을 징벌을 피하기 위해 믿는 것이나 장차 받을 보상 때문에 믿는 것이나, 둘 다 유아적인 믿음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보상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사랑에 감격하여 오직 그 사랑 하나 때문에 믿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신 천국은 내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이 사랑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에 취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결국 새로운 존재로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이미 영원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복음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김영봉/ 와싱톤한인교회 담임목사
*이 글은 IVP BOOKNEWS 09년 5~6월호 기고글입니다.
김영봉 목사 (Rev. Kim, Young Bong)
Email: bong320@hotmail.com
1958 년 충청남도 당진에서 김정섭 장로와 홍경순 권사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충남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중학교 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목회 사역을 위해 감리교 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 했다. 미국 남감리교대학교(SMU, Dallas, Texas)의 퍼킨스 신학대학원(Perkins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연구를 지속한 뒤,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McMaster University) 대학원 종교학부에서 신약성서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Ph. D.)를 받았다. 유학하는 동안 미국 연합감리교회에서 Deacon 안수를 받았고 (1989), 1993년에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정회원 안수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강림감리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하던 중, 감리교 계통의 협성대학교 신학과로부터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신약신학을 가르치며(1992-2001) 목회 활동과 선교 활동에 참여해 왔으며, 2002년에는 미국 드류 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연구년을 보냈다. 그 동안 <사귐의 기도>,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 >; 등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2003년부터 First United Methodist Church of Belmar, NJ에서 목회했으며, 2005년 와싱톤한인교회의 부름을 받고 이민 목회의 발걸음을 시작했다. 목회를 향한 김목사의 소망은 단 한 가지, 영적 훈련과 영적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과 진리를 세상에 선명하게 드러내는 교회(공동체)를 가꾸어가는 것이다. 1985년에 결혼한 아내 도현주, 88년에 태어난 Original Texan 민우 그리고 89년에 태어난 애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