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정치인과 진보 교육 그리고 세계관

오늘 커리큘럼 세미나 시간이 나름 흥미로왔다.
미국의 교육에 있어서 커리큘럼의 역사에 관해서 전반적으로 다루면서 커리큘럼의 세 가지 촛점 (subject matter, society, individual)이 각각 어떤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서 강조되었는지 알아보았다. 미국 교육의 커리큘럼은 초창기 목회자들을 교육하는 것으로 시작이 되었고, 그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로 인해서 학과목(subject matter)이 강조가 되었다. 이 때는 나름 엘리트 교육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목회자와 리더만 훌륭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국가의 공교육이 시작되었다. 리더를 제대로 뽑으려면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도 무엇이 좋은 것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폭넓은 교육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공교육이 시작되었고, 공교육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을 도와주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목회자 혹은 리더 중심의 교육은 그 비중이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공교육적 측면이 강해졌다. 이러한 공교육은 커리큘럼의 사회(society)의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그러다가 점점 학생들의 관심과 필요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특히 John Dewey를 기점으로 학생 개인(individual)의 측면이 강조되게 된다.
Subject Matter, Society, 그리고 Individual 이 세 초점들은 자주 번갈아가면서 커리큘럼의 중심에 섰는데, 종종 국가에서 주도하는 교육개혁은 subject matter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진보주의 교육자들은 학생들의 관심과 필요를 채우기 위한 교육을 하기 위해서 애썼다.
20세기 말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큰 영향을 미친 교육개혁이 두 번 있었는데, 이는 레이건 그리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혹은 역시나!) 두 대통령은 모두 보수적인 정당인 공화당 출신이다. 전자는 Nation At a Risk라는 상당히 선동적인 구호를 통해서, 후자는 No Child Left Behind라는 다소 따뜻해 보이는 구호로 교육을 개혁하려고 했다. 이 두 개혁의 공통점은 교과목 중심(subject matter) 교육으로 돌아가며, 교육 전문가들이 아닌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교육 개혁안이라는 점에 있다.
서론이 길었는데, 흥미로운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이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무한경쟁을 유발시키는 교육을 주창한 사람들은 소위 보수주의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여태까지 교육자들이 현장에서 애써가면서 연구한 것들을 무시하고, 교육자들을 무능한 사람들로 몰아붙이며, 아이들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것을 반대하며,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학교별 서열화를 조장한다.
교육을 공부하는 학생에 입장에서 이러한 보수적인 정치인들의 교육개혁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 너무너무 걱정이 된다. 오늘 수업에서는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보수적 정치인들의 위로부터 명령하는 식의(top-down) 교육개혁에 대항해야 할지 열띤 토론을 했다. 교수님은 종신 재직권(tenure)를 받은 교사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걸고 일어서서 투쟁해야 한다고까지 말씀을 하셨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오는데, 생각이 복잡했다. 내가 기독교학교교육이라는 것을 (적어도 보수적인 교단에서) 배우면서, 공립교육은 세속적이고 아동들을 세속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악의 소굴과 같았다. 이곳 주립대학의 교육대학원에 오니 그와는 반대로 공립학교 교육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보수적인 정치인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보수 정치인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선이 되곤 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으로 말하곤 한다. 하나님이 세우신 대통령이 실은 하는 것은 교육 현장에서 애써서 헌신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교사들을 모욕하고,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현장으로 몰아붙이고, 학교를 서열화하는 일이다.
세계관적으로 내가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나름 정치하고 교육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아동 중심적인 진보교육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교육을 심하게 망치는 제발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이다.
